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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종(丁若鍾)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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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760(영조 36)
졸년1801(순조 1)
시대조선후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학자 > 유생
정재원(丁載遠)
출신지경기도 광주(지금의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저서『주교요지』
저서『성교전서(聖敎全書)』

[상세내용]

정약종(丁若鍾)
1760년(영조 36)∼1801년(순조 1). 조선 후기의 학자‧천주교순교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본관은 나주(羅州).

경기도 광주(지금의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출신. 진주목사 정재원(丁載遠)의 아들이며, 정약현(丁若鉉)정약전(丁若銓)정약용(丁若鏞)의 4형제 중 셋째이다.

일찍이 이익(李瀷)을 사사하여, 천성이 곧고 모든 일에 정성을 다 하는 성품을 지녀, 서학서(西學書)를 접하게 되자 이에 심취하여 가톨릭교리를 연구함으로써 당대에서 가장 교리지식이 뛰어났다.

1791년(정조 15) 천주교박해로 형제와 친구들이 모두 배교 또는 멀리 하여도,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주문모(周文謨)신부가 입국한 뒤로는 명도회장(明道會長)으로 임명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교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는데, 특히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한문본교리책에서 중요한 것만을 뽑아 누구나 알기 쉽도록 우리말로 『주교요지』라는 책을 써서 전교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뒤 교리서를 종합, 정리하여 『성교전서(聖敎全書)』라는 책을 쓰던 중 박해를 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01년 주문모의 입국사건에 연루되어 2월에 체포되고 대역죄인으로 다스려져, 2월 26일 이승훈(李承薰)최창현(崔昌顯)홍낙민(洪樂民)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邪學懲義
黃嗣永帛書
한국천주교회사(달레原著, 崔奭祐‧安應烈譯註, 분도출판사, 1980)

[집필자]

최석우(崔奭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