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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일(尹有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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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1760(영조 36)
졸년1795(정조 19)
시대조선후기
활동분야종교 > 천주교인
출신지경기도 여주

[상세내용]

윤유일(尹有一)
1760년(영조 36)∼1795년(정조 19). 천주교 신자‧순교자. 세례명은 바오로. 경기도 여주 출신.

권철신(權哲身)권일신(權日身)형제와 가까이 지내다 입교하였다. 이승훈(李承薰)권일신 등이 가성직(假聖職)제도를 만들어 교회활동을 하다가 북경주교에게 교회법상의 유권해석을 구하기 위하여 1789년(정조 13) 밀사를 보낼 때 이 일을 맡아 회답을 받아왔다.

이때 북경에서 조건 영세와 성체성사 및 견진성사를 받았으며, 그가 가져온 회답에 따라 조선교회는 가성직제도를 해체하고 성직자 영입운동을 펴나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790년 또 다시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는 밀사로서 북경에 들어가 파견약속을 받고 돌아왔다.

이때 조상에 대한 제사가 천주교에서 금지되고 있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신자들의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다.

1792년 세번째로 북경교회에 들어가 선교사파견을 재요청, 1794년 주문모(周文謨)신부가 입국할 때 지황(池潢)과 함께 안내를 맡아 서울로 잠입하게 하였다.

1795년 주문모신부 체포소동이 일어난 이른바 을묘실포사건이 발생하고 입국에 도움을 준 인물들이 밝혀져 지황최인길(崔仁吉) 등과 같이 체포되어, 그해 6월 28일에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闢衛編
邪學懲義
推案
韓國天主敎會史 上(달레, 安應烈‧崔奭祐 譯註, 芬道出版社, 1979)
韓國天主敎會史硏究(李元淳,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집필자]

이원순(李元淳)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