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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현(閔耆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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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경(子慶)
호(號)이송거사(二松居士)
생년1751(영조 27)
졸년1811(순조 11)
시대조선후기
본관여흥(驪興)
활동분야문신 > 문신
민백분(閔百奮)

[상세내용]

민기현(閔耆顯)
1751년(영조 27)∼1811년(순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자경(子慶), 호는 이송거사(二松居士). 대사성을 지낸 민백분(閔百奮)의 아들이다. 한양에서 살았다.

문사(文詞)가 일찍 성취되어 약관에 상상(上庠)에 올랐다. 정조 초년에 아버지가 여주에 은거하자, 그는 문을 닫고 어버이를 봉양하면서 오로지 학문에만 힘을 기울였다. 왕은 그의 효행의 소식을 듣고 1798년(정조 22)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에 임명하고, 이어 고창현감을 제수하였다.

180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부수찬이 되고, 이듬해 초계문신(抄啓文臣)에 뽑히고 함경도 암행어사가 되어 길주목사 이징만(李澄萬) 등 여덟 고을 수령의 불치상(不治狀)을 보고하였다.

그뒤 외직으로 충청감사를 거쳐 대사간이조참의부제학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1809년 예조참판이 되었다. 이어 개성유수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죽었다. 관직에 있을 때는 온건한 처신을 하여 칭송을 받았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國朝榜目
老洲集(吳熙常)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