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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후(金基厚)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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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중(士重)
시호(諡號)효헌(孝憲)
생년1747(영조 23)
졸년1830(순조 30)
시대조선후기
본관청풍(淸風)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지묵(金持黙)

[상세내용]

김기후(金基厚)
1747년(영조 23)∼1830년(순조 3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중(士重).

부친은 판돈녕부사 김지묵(金持黙)이다. 이귀상(李龜祥)의 문인이다.

1774년(영조 50) 생원시에 합격,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영릉참봉(寧陵參奉)이 되었고, 1811년(순조 11) 총융사(摠戎使)에 임명되었다.

이어 금위대장공조판서지돈녕부사도총관한성부판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왕실과 인척관계가 있으므로 항상 언행에 조심하여 60년 동안 궁궐에 출입하였어도 집안사람들에게 궁궐 안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궁궐일을 관장하게 되자, 더욱 근신하여 영비(營費)를 추호도 낭비하지 않고 봉직에 전력을 다하였다.

1826년 노령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승진하였다가, 서만수(徐萬修)의 무고를 받아 외진 고을에 유폐된 지 수년 만에 죽고 말았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憲宗實錄
梅山集

[집필자]

오성(吳星)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