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李采)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774CC44FFFFB1745X0 |
자(字) | 계량(季良) |
호(號) | 화천(華泉) |
시호(諡號) | 문경(文敬) |
생년 | 1745(영조 21) |
졸년 | 1820(순조 20)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우봉(牛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조부 | 이재(李縡) |
저서 | 『화천집』 |
[상세내용]
이채(李采)
1745년(영조 21)∼1820년(순조 2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계량(季良), 호는 화천(華泉). 이재(李縡)의 손자이다.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휘령전(徽寧殿)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뒤 사헌부‧호조‧형조의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이 되었을 때 무고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함과 동시에 가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
1790년(정조 14)다시 벼슬길에 올라 홍릉령(弘陵令), 지례현감, 선산부사, 상주‧충주‧황주의 목사, 익위사의 위수‧사어 등의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 한성좌우윤 및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저서로 『화천집』 16권 8책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휘령전(徽寧殿) 참봉에 제수되었다.
그뒤 사헌부‧호조‧형조의 벼슬을 거쳐 돈녕부주부를 지냈다. 음죽현감이 되었을 때 무고로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학문에 전념함과 동시에 가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
1790년(정조 14)다시 벼슬길에 올라 홍릉령(弘陵令), 지례현감, 선산부사, 상주‧충주‧황주의 목사, 익위사의 위수‧사어 등의 관직을 거쳐 호조참판, 한성좌우윤 및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저서로 『화천집』 16권 8책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김창수(金昌洙)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