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정(李秉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D1C815B1742X0 |
이명(異名) | 이병정(李秉正) |
자(字) | 이중(彛仲) |
호(號) | 이암(彛菴) |
생년 | 1742(영조 18) |
졸년 | 1804(순조 4)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창수(李昌壽) |
조부 | 이민제(李敏躋) |
증조부 | 이언유(李彦維) |
처부 | 조재호(趙載浩) |
외조부 | 유담(柳紞) |
묘소 | 충남(忠南) 보령시(保寧市) 주산면(珠山面) 창암리(倉巖里)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병정(李秉鼎)
1742년(영조 18)∼1804년(순조 4).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중(彛仲), 호는 이암(彛菴). 아명은 이병정(李秉正).
증조부는 이언유(李彦維), 조부는 이민제(李敏躋)이고, 외조부는 유담(柳紞)이며, 처부는 조재호(趙載浩)이다. 부친은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지낸 문헌공(文獻公)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영조 38)년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2등 24위로 합격하고, 1766(영조 42)년 병술(丙戌) 정시(庭試) 병과(丙科) 8위로 급제하여,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력을 붙좇고 이를 좋아해 가는 곳마다 탐욕스러웠으나 부끄러워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사관의 평은, 재주가 뛰어나고 문사가 있다고 하였다.
조선후기 시(詩)‧서(書)‧화(畵)에 뛰어났던 육교(六橋) 이조묵(李祖黙)이 아들이다.
문집으로 『이암집(彛菴集)』 3권이 있다.
묘(墓)는 충남(忠南) 보령시(保寧市) 주산면(珠山面) 창암리(倉巖里) 남전 서쪽 기슭에 있다.
증조부는 이언유(李彦維), 조부는 이민제(李敏躋)이고, 외조부는 유담(柳紞)이며, 처부는 조재호(趙載浩)이다. 부친은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지낸 문헌공(文獻公) 이창수(李昌壽)이다.
1762(영조 38)년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2등 24위로 합격하고, 1766(영조 42)년 병술(丙戌) 정시(庭試) 병과(丙科) 8위로 급제하여,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력을 붙좇고 이를 좋아해 가는 곳마다 탐욕스러웠으나 부끄러워할 줄을 몰랐다고 한다. 사관의 평은, 재주가 뛰어나고 문사가 있다고 하였다.
조선후기 시(詩)‧서(書)‧화(畵)에 뛰어났던 육교(六橋) 이조묵(李祖黙)이 아들이다.
문집으로 『이암집(彛菴集)』 3권이 있다.
묘(墓)는 충남(忠南) 보령시(保寧市) 주산면(珠山面) 창암리(倉巖里) 남전 서쪽 기슭에 있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國朝文科榜目
國朝文科榜目
[집필자]
박경이
대표명 | 이병정(李秉鼎) |
성명 | 이병정(李秉鼎) |
성명 : "이병정(李秉鼎)"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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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