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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동(金翰東)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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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한지(翰之)
호(號)와은(臥隱)
생년1740(영조 16)
졸년1811(순조 11)
시대조선후기
본관의성(義城)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경필(金景泌)
출신지안동

[상세내용]

김한동(金翰東)
1740년(영조 16)∼1811년(순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한지(翰之), 호는 와은(臥隱). 안동 출신. 부친은 좌랑 김경필(金景泌)이다.

1763년(영조 39) 진사가 되고, 1781년(정조 5) 경릉참봉이 되었다.

1787년 대륜차(大輪次: 과거의 불합격자에게 다시 보이는 시험)에서 부(賦)에 수석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의 특전을 받았으며, 1789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되었다.

이듬해 부교리지평정언을 거쳐, 1791년 헌납이 되어 수해를 당한 영남지방 재해민의 기곤(饑困)함을 들어 환곡(還穀)의 환수를 연기하여줄 것을 진언하였다. 이어서 수찬을 거쳐 이듬해 동부승지, 1794년에는 순천부사를 지냈다.

1796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파직되었다가 1799년에 다시 대사간에 기용되었으며, 이어서 승지를 지냈다.

1802년(순조 2) 천주교를 신봉, 각종 제례에 참석하지 않아 지평 정언인(鄭彦仁)의 탄핵을 받고 명천(明川)에 유배되었다.

그뒤 흡곡(歙谷)으로 이배되었다가 1805년에 풀려났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定齋集

[집필자]

원유한(元裕漢)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