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굉(金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AE40AD49FFFFB1739X0 |
자(字) | 자야(子野) |
호(號) | 귀와(龜窩) |
생년 | 1739(영조 15) |
졸년 | 1816(순조 16)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의성(義城)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광헌(金光憲)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굉(金㙆)
1739년(영조 15)∼1816년(순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야(子野), 호는 귀와(龜窩).
부친은 생원 김광헌(金光憲)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인.
1773년(영조 49) 사마시를 거쳐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1년에 스승 이상정이 죽자 스승의 유문(遺文)을 정리하였다.
1787년 전적을 거쳐 지평‧정언을 역임하였고 단양군수에 제수되었으며, 시강원문학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재직시에는 서리(胥吏)를 엄단하고 위정염간(爲政廉簡)하여 군민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으며, 문학에 남달리 뛰어났고 필법이 높아 능히 한 체제를 이룰 만하였다.
부친은 생원 김광헌(金光憲)이다. 이상정(李象靖)의 문인.
1773년(영조 49) 사마시를 거쳐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1년에 스승 이상정이 죽자 스승의 유문(遺文)을 정리하였다.
1787년 전적을 거쳐 지평‧정언을 역임하였고 단양군수에 제수되었으며, 시강원문학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재직시에는 서리(胥吏)를 엄단하고 위정염간(爲政廉簡)하여 군민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으며, 문학에 남달리 뛰어났고 필법이 높아 능히 한 체제를 이룰 만하였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葵史
國朝榜目
定齋集
葵史
國朝榜目
定齋集
[집필자]
배종무(裵鍾茂)
성명 : "김굉(金㙆)"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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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