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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로(鄭宗魯)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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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앙(士仰)
호(號)무적옹(無適翁)
생년1738(영조 14)
졸년1816(순조 16)
시대조선후기
본관진양(晉陽)
활동분야학자 > 성리학자
출신지함창(咸昌: 지금의 문경군 영순면)
저서『소대명신언행록(昭大名臣言行錄)』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종로(鄭宗魯)
1738년(영조 14)∼1816년(순조 16).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사앙(士仰), 호는 입재(立齋)무적옹(無適翁).
1. 가계와 생애
대재학 정경세(鄭經世)의 6대손으로 함창(咸昌: 지금의 문경군 영순면)의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 외가에서 살다가 9세 때 본가인 상주로 돌아왔다.

어릴 때 가학을 전수받았으며, 중년에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 나가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벼슬길에 나가려 하지 않고 성리학의 연구에 전념하였으나, 학문과 지조있는 행실로 여러 번 관직에 천거되었다.

52세 때는 광릉참봉(光陵參奉)에 제수되었고, 정조가 재상 채제공(蔡濟恭)에게 그의 인품을 물었을 때 채제공은 그를 “경학과 문장이 융성하여 영남 제1의 인물이라.” 칭송하였다.

이에 의금부도사로 특진되었고, 59세 때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 60세 때는 강령현감함창현감이 제수되었으며,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간 뒤에도 사헌부지평장령 등의 직함이 내려오기도 하였다.
2. 성리학제론에 대한 입장과 비판
그는 평생을 성리학의 연구와 강학‧저술에 힘썼으며, 「태극권자설(太極圈子說)」과 「태극동정설(太極動靜說)」 등 태극의 개념을 논의하면서 태극이나 이(理)가 동정(動靜)함을 주장하였다.

그것은 태극과 동정을 분리시키는 입장의 이원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분개간(分開看)의 개념적 분리를 인정하면서 혼융간(渾融看)의 일관성의 인식도 병행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이(李珥)의 성리학설이 이(理)와 기(氣)가 서로 떠날 수 없음만 강조하고 이와 동정을 분리시켜 기(氣)만의 능동성을 인정하고 이는 마치 죽은 사람이 짐처럼 말등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본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기의 동정이 바로 이의 동정”이라는 일관성의 이해에서 “이가 먼저 움직이고 고요하면 기가 막 생성한다(理先動靜而氣生也).”라 하여 주리론적인 입장을 선명히 밝혔다.

「이강기약설(理强氣弱說)」에서 형체가 없고 작위가 없는 이는 약하다고 보고, 형체가 있고 작위가 있는 기는 강하다고 보는 주기론적 입장을 거부하고 있다.

기가 이를 이기는 일은 잠시뿐이고 이가 기를 이기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 하여 기의 주재인 이의 강함을 지적하여 주리론적 입장을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에서도 마음은 이와 기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하고, 여기에서 이가 마음을 주재한다고 밝혀 주리론의 입장을 관철하였다.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관하여서도 이황(李滉)『성학십도(聖學十圖)』 제6도인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의 상‧중‧하 3도 중에서 중도를 해석하면서 사단뿐만 아니라 칠정도 본연지성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의 양쪽이 다 이가 발동하는 동시에 기가 발동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서 사람과 사물의 성품이 서로 다르다는 상이론(相異論)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상설(五常說)」‧「솔성설(率性說)」‧「일원설(一原說)」‧「오행설(五行說)」‧「지두설(地頭說)」 등에서 이러한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우주 안의 모든 사물을 날짐승(飛)‧물고기(潛)‧동물(動)‧식물(植)로 4분하면서, 공중을 날고, 물속에 잠기고, 움직이고, 땅에 심어진 각각의 경우가 있다고 본다. 그 중에서 식물은 그 위치가 고정되어 있고 나머지 세 경우는 그 위치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동물의 하나이지만 모든 동물들과는 달리 의리(義理)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각각의 경우가 다르며 인간이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은 의리로 확인될 수 있지만 원래 이(理)는 사람과 사물의 차이가 없으나 기질의 바르고 치우친 차이에 따라 이 기질 속에 깃들어 있는 성품이 사람과 사물이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과 사물은 근원이 동일하기 때문에 이가 같고(理同), 부여받은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성품은 다른 것(性異)이라고 본다.

이러한 그의 성품론은 기호학파의 호론(湖論)과 접근하는 것이다. 「귀신론(鬼神論)」에서는 당시에 유입된 서학(천주교)의 천당지옥설과 죽은 다음의 영혼이 소멸되는지 여부 및 제사에서의 신주가 지닌 의미에 관하여 문답형식으로 성리학의 영혼론을 논의하고 있다. 곧, 죽은 다음에 그 공덕을 자손에게 미치는 정도로 조상의 혼령이 남아 있으며, 조상의 기운은 자손에게 전하여져서 감응할 수 있고, 제사에서 마땅한 이치가 있으면 혼백의 기도 남아 있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의 문하에는 이원조(李源祚)강엄(康儼) 등이 있으며, 사후에 우산서원(愚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술로는 문집과 『소대명신언행록(昭大名臣言行錄)』 등이 있다.

[참고문헌]

立齋集
朝鮮儒學史(玄相允, 民衆書館, 1949)
立齋 鄭宗魯의 太極動靜說(劉明鍾, 朝鮮後期性理學, 1985)

[집필자]

김장태(琴章泰)
대표명정종로(鄭宗魯)
종로(宗魯)
성명정종로(鄭宗魯)
사앙(士仰)
입재(立齋)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