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趙鼎鎭)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70C815C9C4B1732X0 |
자(字) | 사수(士受) |
생년 | 1732(영조 8) |
졸년 | 1792(정조 16)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풍양(豊壤)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조재덕(趙載德) |

[관련정보]
[상세내용]
조정진(趙鼎鎭)
1732년(영조 8)∼1792년(정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수(士受). 교리 조재덕(趙載德)의 아들이다.
1753년(영조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1761년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된 뒤, 호조정랑으로 재임중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영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779년 홍문록(弘文錄)‧도당록(都堂錄)에 올랐으며, 이듬해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서장관에 임명된 한광근(韓光近)이 중병에 걸려 대신 청나라에 다녀와 견문사(見聞事)를 왕에게 바쳤다.
1781년 검토관(檢討官)‧동부승지를 역임하고, 이듬해 대사간‧이조참의에 이어 대사성이 된 뒤, 1786년 강화유수로 나갈 때까지 5년 동안 대사성‧대사간‧이조참의를 번갈아 역임하였다.
1787년 이조참판‧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1791년 호조판서‧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을 역임하였다.
1753년(영조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1761년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된 뒤, 호조정랑으로 재임중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정랑이 되었으며, 『영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779년 홍문록(弘文錄)‧도당록(都堂錄)에 올랐으며, 이듬해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의 서장관에 임명된 한광근(韓光近)이 중병에 걸려 대신 청나라에 다녀와 견문사(見聞事)를 왕에게 바쳤다.
1781년 검토관(檢討官)‧동부승지를 역임하고, 이듬해 대사간‧이조참의에 이어 대사성이 된 뒤, 1786년 강화유수로 나갈 때까지 5년 동안 대사성‧대사간‧이조참의를 번갈아 역임하였다.
1787년 이조참판‧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1791년 호조판서‧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耳溪集
正祖實錄
國朝榜目
耳溪集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대표명 | 조정진(趙鼎鎭) |
성명 | 조정진(趙鼎鎭) |
성명 : "조정진(趙鼎鎭)"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