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순(金載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7ACC21CB1732X0 |
자(字) | 응덕(應德) |
생년 | 1732(영조 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연안(延安)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묵(金黙) |
조부 | 김상옥(金相玉) |
외조부 | 신정하(申靖夏)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재순(金載順)
1732년(영조 8)∼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응덕(應德).
조부는 대사헌 김상옥(金相玉), 부친은 김묵(金黙)이며, 모친은 교리 신정하(申靖夏)의 딸이다.
1759년(영조 35) 성균관유생으로 있으면서 통독(通讀)과 제술(製述)시험에 일등을 하여, 그해 식년전시에 바로 나아가 을과로 급제하여 곧 한림(翰林)에 제수되었다.
그뒤 은산(殷山)‧평택(平澤)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고을을 잘 다스려 왕의 신임을 얻었고, 경직에 복귀하여서는 홍문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세손(世孫)의 교육에도 참여하였다. 관계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승지‧대사간을 역임한 후 특히 지방관으로서의 재질을 인정받아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다.
정조가 즉위하자 대사헌으로 외척의 화를 우려한 상소를 올렸는데, 도리어 외척처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탄핵을 받아 전라도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그뒤 풀려나와 대사헌을 지냈다.
조부는 대사헌 김상옥(金相玉), 부친은 김묵(金黙)이며, 모친은 교리 신정하(申靖夏)의 딸이다.
1759년(영조 35) 성균관유생으로 있으면서 통독(通讀)과 제술(製述)시험에 일등을 하여, 그해 식년전시에 바로 나아가 을과로 급제하여 곧 한림(翰林)에 제수되었다.
그뒤 은산(殷山)‧평택(平澤)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고을을 잘 다스려 왕의 신임을 얻었고, 경직에 복귀하여서는 홍문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세손(世孫)의 교육에도 참여하였다. 관계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승지‧대사간을 역임한 후 특히 지방관으로서의 재질을 인정받아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다.
정조가 즉위하자 대사헌으로 외척의 화를 우려한 상소를 올렸는데, 도리어 외척처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탄핵을 받아 전라도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그뒤 풀려나와 대사헌을 지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正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우인수(禹仁秀)
명 : "재순(載順)"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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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