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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언정(奇彦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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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국진(國鎭)
호(號)나와(懶窩)
시호(諡號)정간(靖簡)
생년1716(숙종 42)
졸년1797(정조 21)
시대조선후기
본관행주(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기정후(奇挺後)

[상세내용]

기언정(奇彦鼎)
1716년(숙종 42)∼1797년(정조 2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국진(國鎭).(주1)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奎106]의 문과 급제 기록 및 나와집의 행장 참고.
호는 나와(懶窩).

부친은 기정후(奇挺後)이다.

1763년(영조 39) 10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는데 1771년에는 정언이 되었다.

명종 때 유명한 성리학자인 기대승(奇大升)의 후예로서 대대로 전라도 광주에서 살았는데, 이 당시 그 후광을 입어 1782년(정조 6)에는 당상관으로 특별히 초자(超資)되어 승정원동부승지가 되었으며, 계속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성격이 청렴하고 강직해서 1786년 대사간에 발탁된 뒤, 세 번이나 연달아 이를 역임하다가 1792년에는 대사헌에 취임하여 관원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진력했다.

1795년에는 다시 공조판서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심취하여 관계서적을 조석으로 암송했으며, 이런 자세는 그의 조상인 기대승을 방불하게 하였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光州邑誌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5-14資憲大夫工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奇公諡狀을 참고하여 졸년 1797(정조 21 정사) 추가.
2012-10-06문과 기록 및 나와집의 행장을 참고하여 자 중화(仲和)를 국진으로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