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택(金陽澤)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591D0DDB1712X0 |
자(字) | 사서(士舒) |
호(號) | 건암(健庵) |
시호(諡號) | 문간(文簡) |
생년 | 1712(숙종 38) |
졸년 | 1777(정조 1)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광산(光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진규(金鎭圭) |
5대조 | 김장생(金長生) |
저서 | 『건암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양택(金陽澤)
1712년(숙종 38)∼1777년(정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서(士舒), 호는 건암(健庵). 김장생(金長生)의 5세손으로, 조부는 숙종의 장인이었던 김만기(金萬基)이고, 부친은 예조판서 김진규(金鎭圭)이다.
1741년(영조 1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4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헌납‧부제학을 거쳐 원손사부(元孫師傅)‧대사성‧우빈객(右賓客)‧대제학을 역임하였다.
1767년에 우의정이 된 뒤, 1776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아들 김하재(金夏材)가 역신(逆臣)으로 몰려 벼슬을 추탈당했다가 뒤에 다시 복관되어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대제학을 역임,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저서로는 『건암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1741년(영조 17)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74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헌납‧부제학을 거쳐 원손사부(元孫師傅)‧대사성‧우빈객(右賓客)‧대제학을 역임하였다.
1767년에 우의정이 된 뒤, 1776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아들 김하재(金夏材)가 역신(逆臣)으로 몰려 벼슬을 추탈당했다가 뒤에 다시 복관되어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대제학을 역임,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저서로는 『건암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國朝榜目
號譜
正祖實錄
國朝榜目
號譜
[집필자]
손승철(孫承喆)
명 : "양택(陽澤)"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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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