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장(李彛章)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74C7A5B1708X0 |
자(字) | 군칙(君則) |
호(號) | 수남(水南) |
시호(諡號) | 충정(忠正) |
생년 | 1708(숙종 34) |
졸년 | 1764(영조 40) |
시대 | 조선후기 |
본관 | 한산(韓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필중(李必重)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이장(李彛章)
1708년(숙종 34)∼1764년(영조 4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군칙(君則), 호는 수남(水南). 설서 이필중(李必重)의 아들이다.
1724년(경종 4) 사마시에 합격하고, 1735년(영조 1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9년 전라도암행어사를 거쳐 그해에 부교리가 되었다.
1748년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인 1749년 부승지에 오르고, 그뒤 외직인 장단부사와 동래부사를 역임한 뒤 1762년 도승지가 되었다.
그해 5월 영조가 세자를 휘령전(徽寧殿)에 불러, 죽은 정성왕후(貞聖王后: 영조의 비)와 영빈(暎嬪: 세자의 생모)의 계시가 있다 하여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려 하자, 한낱 여인의 계시를 믿고 세자를 죽이려 하느냐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를 막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1724년(경종 4) 사마시에 합격하고, 1735년(영조 1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9년 전라도암행어사를 거쳐 그해에 부교리가 되었다.
1748년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인 1749년 부승지에 오르고, 그뒤 외직인 장단부사와 동래부사를 역임한 뒤 1762년 도승지가 되었다.
그해 5월 영조가 세자를 휘령전(徽寧殿)에 불러, 죽은 정성왕후(貞聖王后: 영조의 비)와 영빈(暎嬪: 세자의 생모)의 계시가 있다 하여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려 하자, 한낱 여인의 계시를 믿고 세자를 죽이려 하느냐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이를 막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耳溪集
國朝榜目
耳溪集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명 : "이장(彝章)"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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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