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징(李夏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D558C9D5B1686X0 |
생년 | 1686(숙종 12) |
졸년 | 1755(영조 3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한산(韓山) |
활동분야 | 변란 > 반역자 |
부 | 이명준(李明浚) |
[상세내용]
이하징(李夏徵)
1686년∼1755년(영조 31). 조선 중기의 역신(逆臣). 본관은 한산(韓山).
동래부사(東萊府使) 이명준(李明浚)의 아들이며, 신임사화 때의 역신 이명언(李明彦)‧이명의(李明誼)의 조카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47년 나주목사로 있을 때 수관문제(輸款問題)로 동래에 유배되었고, 괘서사건을 일으킨 윤지(尹志)와는 사우관계(死友關係)를 맺었다.
나주괘서사건이 일어났을 때, 임국훈(林國薰)‧이효식(李孝植) 등과 함께 연루되었는데, 임국훈이 관에 바친 상자 속에는 윤지와 서신교환을 한 사람 가운데 이하징의 서찰이 가장 많았으며, 그 내용 또한 친밀하여 골육과 같았다.
왕이 친국을 할 때 윤취상(尹就商: 윤지의 아버지)의 역적행위를 부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얻어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복주(伏誅)되었다.
동래부사(東萊府使) 이명준(李明浚)의 아들이며, 신임사화 때의 역신 이명언(李明彦)‧이명의(李明誼)의 조카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47년 나주목사로 있을 때 수관문제(輸款問題)로 동래에 유배되었고, 괘서사건을 일으킨 윤지(尹志)와는 사우관계(死友關係)를 맺었다.
나주괘서사건이 일어났을 때, 임국훈(林國薰)‧이효식(李孝植) 등과 함께 연루되었는데, 임국훈이 관에 바친 상자 속에는 윤지와 서신교환을 한 사람 가운데 이하징의 서찰이 가장 많았으며, 그 내용 또한 친밀하여 골육과 같았다.
왕이 친국을 할 때 윤취상(尹就商: 윤지의 아버지)의 역적행위를 부인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얻어 종성으로 유배되었다가, 복주(伏誅)되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집필자]
신정희(申正熙)
명 : "하징(夏徵)"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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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