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하(安命夏)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548BA85D558B1682X0 |
| 자(字) | 국화(國華) |
| 호(號) | 송와(松窩) |
| 생년 | 1682(숙종 8) |
| 졸년 | 1752(영조 28)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광주(廣州) |
| 활동분야 | 기타 > 처사 |

| 저서 | 『배운록(排雲錄)』 |

[상세내용]
안명하(安命夏)
1682년(숙종 8)∼1752년(영조 28).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와(松窩).
13세 때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를 지극히 섬겼다. 뒤뜰의 소나무 아래에 송이가 매일 자라나 그 송이를 캐어 어머니 반찬으로 드리니, 그것을 본 문암(門巖) 손석관(孫碩寬)이 「송균설(松菌說)」을 지어 찬양하였다. 19세 때 갈암(葛庵) 이현일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는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연구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이상정(李象靖)‧정만양(鄭萬陽)‧정채양(鄭蔡陽) 등과 교유하였다. 1723년(경종 3) 이현일의 신원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문인으로 송덕륭(宋德隆) 등이 유명하다.
밀양의 광천서원(廣川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배운록(排雲錄)』, 『송와집(松窩集)』 등이 있다.
13세 때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를 지극히 섬겼다. 뒤뜰의 소나무 아래에 송이가 매일 자라나 그 송이를 캐어 어머니 반찬으로 드리니, 그것을 본 문암(門巖) 손석관(孫碩寬)이 「송균설(松菌說)」을 지어 찬양하였다. 19세 때 갈암(葛庵) 이현일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는 성리학과 예학을 깊이 연구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이상정(李象靖)‧정만양(鄭萬陽)‧정채양(鄭蔡陽) 등과 교유하였다. 1723년(경종 3) 이현일의 신원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문인으로 송덕륭(宋德隆) 등이 유명하다.
밀양의 광천서원(廣川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 『배운록(排雲錄)』, 『송와집(松窩集)』 등이 있다.
[참고문헌]
嶺南人物考
[집필자]
이원배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