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조(洪鳳祚)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D64DBD09C870B1680X0 |
자(字) | 우서(虞瑞) |
호(號) | 간산(㿻山) |
생년 | 1680(숙종 6) |
졸년 | 1760(영조 3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남양(南陽[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홍숙(洪璛) |
[관련정보]
[상세내용]
홍봉조(洪鳳祚)
1680년(숙종 6)∼1760년(영조 3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土]). 자는 우서(虞瑞), 호는 간산(㿻山). 관찰사 홍숙(洪璛)의 아들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이다.
노론으로, 1722년(경종 2)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일어난 신임사화 때 온성에 유배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와 이듬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738년 헌납, 이듬해 부응교, 1740년 집의를 거쳐 1747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1750년 대사성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 알려진 것으로는 신라시조왕묘비(新羅始祖王墓碑)‧좌의정민정중비(左議政閔鼎重碑)‧좌의정이세백비(左議政李世白碑)‧영의정신완표(領議政申琓表)‧판중추부사홍진도비(判中樞府事洪振道碑) 등이 있다.
노론으로, 1722년(경종 2)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일어난 신임사화 때 온성에 유배되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와 이듬해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738년 헌납, 이듬해 부응교, 1740년 집의를 거쳐 1747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1750년 대사성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 알려진 것으로는 신라시조왕묘비(新羅始祖王墓碑)‧좌의정민정중비(左議政閔鼎重碑)‧좌의정이세백비(左議政李世白碑)‧영의정신완표(領議政申琓表)‧판중추부사홍진도비(判中樞府事洪振道碑) 등이 있다.
[참고문헌]
景宗實錄
英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號譜
朝鮮金石總覽
韓國系行譜
英祖實錄
純祖實錄
國朝榜目
號譜
朝鮮金石總覽
韓國系行譜
[집필자]
김양수(金良洙)
명 : "봉조(鳳祚)"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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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