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천(李倚天)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758CC9CB1676X0 |
자(字) | 사립(斯立) |
호(號) | 박직와(樸直窩) |
생년 | 1676(숙종 2) |
졸년 | 1753(영조 2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택진(李澤震) |
조부 | 이백(李白) |
외조부 | 임가재(林可材) |
[상세내용]
이의천(李倚天)
1676년(숙종 2)∼1753년(영조 2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립(斯立), 호는 박직와(樸直窩).
부친은 통제사 이택진(李澤震)이며, 모친은 임가재(林可材)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헌납‧지평‧장령‧사간을 거쳐 1726년(영조 2)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여 할아버지 이백(李白)이 몸져 누었을때는 옆에서 100일을 간호하였으며, 임금을 섬김에는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었다.
신임사화 때에는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를 주살(誅殺)하기를 주장하는 계(啓)를 올리기도 하였다.
부친은 통제사 이택진(李澤震)이며, 모친은 임가재(林可材)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헌납‧지평‧장령‧사간을 거쳐 1726년(영조 2)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여 할아버지 이백(李白)이 몸져 누었을때는 옆에서 100일을 간호하였으며, 임금을 섬김에는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었다.
신임사화 때에는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를 주살(誅殺)하기를 주장하는 계(啓)를 올리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直菴集
李庵集
直菴集
李庵集
[집필자]
최진옥(崔珍玉)
명 : "의천(倚天)"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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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