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철(申思喆)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C0ACCCA0B1671X0 |
자(字) | 명서(明敍) |
생년 | 1671(현종 12) |
졸년 | 1759(영조 3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단(申鍴)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사철(申思喆)
1671년(현종 12)∼1759년(영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명서(明敍).
부친은 신단(申鍴)이다.
공조좌랑으로 재직하던 중 1709년(숙종 35)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정언‧문학‧지평을 거쳐 1713년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이듬해 이조좌랑을 거쳐 1719년에 전라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경종 즉위 후 대사간‧대사성‧대사헌을 역임한 뒤 신임옥사로 노론이 숙청될 때 파직되었다가 영조 즉위 후 노론이 집권하자 대사헌과 호조판서가 되었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노론이 추방되자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등용되어 강화유수‧예조판서‧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745년 판중추부사로 기로소에 들어갔다. 두 아들이 정승직에 올라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부친은 신단(申鍴)이다.
공조좌랑으로 재직하던 중 1709년(숙종 35)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정언‧문학‧지평을 거쳐 1713년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이듬해 이조좌랑을 거쳐 1719년에 전라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경종 즉위 후 대사간‧대사성‧대사헌을 역임한 뒤 신임옥사로 노론이 숙청될 때 파직되었다가 영조 즉위 후 노론이 집권하자 대사헌과 호조판서가 되었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노론이 추방되자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등용되어 강화유수‧예조판서‧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745년 판중추부사로 기로소에 들어갔다. 두 아들이 정승직에 올라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김용곤(金鎔坤)
자 : "명숙(明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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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