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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유(吳尙游)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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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언(景言)
생년1658(효종 9)
졸년1716(숙종 42)
시대조선중기
본관동복(同福)
활동분야문신 > 문신
오시수(吳始壽)
조부오정원(吳挺垣)

[상세내용]

오상유(吳尙游)
1658년(효종 9)∼1716년(숙종 42).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경언(景言).

조부(祖父)는 오정원(吳挺垣)이고, 부친은 우의정 오시수(吳始壽)이다. 1675년(숙종 1)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에 진사(進士) 3등 24위로 합격하여, 18세에 상상(上庠)에 들어갔다. 1678년(숙종 4) 무오(戊午)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 32위로 급제(及第)하여, 병예조좌랑(兵禮曹佐郞)해운판관(海運判官) 등을 거쳐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가서 정자(正字)에 올랐다.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때 부친(父親) 오시수(吳始壽)삼수(三水)에 유배(流配)되었다가 사약(賜藥)을 받았다. 오상유(吳尙游)는 피눈물을 흘리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묘막(墓幕)을 짓고 아우들과 더불어 죄인(罪人)을 자처(自處)하며 자신을 괴롭혔다. 부친의 치죄(治罪)를 주장하였던 김수항(金壽恒) 등의 죄를 다스리고 당시 역관배(譯官輩)들을 다시 엄국(嚴鞫)하기를 청하며, 부친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여러 차례 송장(訟章)을 지어 주장(奏章)하였다. 오시수(吳始壽)는 기사환국(己巳換局)(1689) 때 대신(大臣)들이 연주(筵奏)하여 관작(官爵)이 회복되었다.

[참고문헌]

朝鮮人名辭書
朝鮮王朝實錄
水村文集
CD-ROM 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집필자]

김학경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