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도(鄭吾道)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815C624B3C4B1647X0 |
| 자(字) | 일관(一貫) |
| 호(號) | 약포(藥圃) |
| 생년 | 1647(인조 25) |
| 졸년 | 1736(영조 12)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하동(河東)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 부 | 정석현(鄭碩賢) |
| 조부 | 정한주(鄭翰周) |
| 외조부 | 유우길(柳佑吉) |

[상세내용]
정오도(鄭吾道)
1647년(인조 25)∼1736년(영조 12).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일관(一貫)이고, 호는 약포(藥圃)이며,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조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정한주(鄭翰周)이며, 부친은 증승정원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정석현(鄭碩賢)이다. 모친은 사과(司果) 문화유씨(文化柳氏) 유우길(柳佑吉)의 딸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문하(門下)에서 성리학(性理學)을 배웠다. 1689년(숙종 15)에 상소(上疏)하여 사문(師門)의 정(正)과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양현(兩賢)의 문묘종사(文廟從祀)와 김수항(金壽恒: 1629∼1689), 오두인(吳斗寅: 1624∼1689),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충직(忠直)함을 변론하였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송시열(宋時烈), 김수항(金壽恒) 등이 유배(流配)되고 성혼(成渾), 이이(李珥) 등이 격하되는 것을 보고 향리에 돌아와 동계(洞契)을 창설하고 향약(鄕約)을 제정하였다.
1710년(숙종 36)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고, 1727년(영조 3)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 전라남도 광주(光州)의 지산사(芝山祠)와 화담사(花潭祠)에 향사(享祀)되었다.
아들로 정화중(鄭華重), 정상중(鄭常重), 정대중(鄭岱重), 정윤중(鄭崙重)이 있다.
조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정한주(鄭翰周)이며, 부친은 증승정원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정석현(鄭碩賢)이다. 모친은 사과(司果) 문화유씨(文化柳氏) 유우길(柳佑吉)의 딸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문하(門下)에서 성리학(性理學)을 배웠다. 1689년(숙종 15)에 상소(上疏)하여 사문(師門)의 정(正)과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양현(兩賢)의 문묘종사(文廟從祀)와 김수항(金壽恒: 1629∼1689), 오두인(吳斗寅: 1624∼1689),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충직(忠直)함을 변론하였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송시열(宋時烈), 김수항(金壽恒) 등이 유배(流配)되고 성혼(成渾), 이이(李珥) 등이 격하되는 것을 보고 향리에 돌아와 동계(洞契)을 창설하고 향약(鄕約)을 제정하였다.
1710년(숙종 36)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고, 1727년(영조 3)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 전라남도 광주(光州)의 지산사(芝山祠)와 화담사(花潭祠)에 향사(享祀)되었다.
아들로 정화중(鄭華重), 정상중(鄭常重), 정대중(鄭岱重), 정윤중(鄭崙重)이 있다.
[참고문헌]
藥圃先生文集
[집필자]
김성수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