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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서(丁好恕)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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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추(士推)
생년1572(선조 5)
졸년1647(인조 25)
시대조선중기
본관나주(羅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윤지(丁胤祉)
생부정윤복(丁胤福)
조부정응두(丁應斗)
증조부정옥형(丁玉亨)

[상세내용]

정호서(丁好恕)
1572년(선조 5)∼1647년(인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추(士推). 정옥형(丁玉亨)의 증손으로, 조부는 정응두(丁應斗)이고, 생부는 정윤복(丁胤福)이며, 생모는 한경상(韓景祥)의 딸이다. 정윤지(丁胤祉)에게 입양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별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에 중훈대부(中訓大夫) 행병조좌랑지제교(行兵曹佐郞知製敎)라는 직함을 가지고 기사관(記事官)으로 활동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 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에 정주목사(定州牧使)로 재직하고 있을 때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자청하여 진압에 나섬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받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발발했을 때에 오랑캐의 침입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유배길에 올랐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