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응삼(羅應參)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B098C751C0BCU9999X0 |
| 자(字) | 중장(仲章) |
| 호(號) | 귀산처사(龜山處士)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나주(羅州) |
| 활동분야 | 충효열 > 의열 |

| 부 | 나안세(羅安世) |

[상세내용]
나응삼(羅應參)
생졸년 미상. 본관은 나주(羅州)=수성(壽城). 자는 중장(仲章), 호는 이이당(怡怡堂), 구산처사(龜山處士).
부친은 건계(建溪) 나안세(羅安世)이고, 형은 행정(杏亭) 나응허(羅應虛)이다.
아버지가 병환중일 때는 그 변을 직접 맛보아 병세를 살폈고,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
1553년(중종 8)에 효자(孝子)로 정려(旋閭)되었다. 그의 호 구산처사(龜山處士)는 임금이 직접 써서 내려 준 것이다. 중종은 중국(中國)의 여섯 효자와 동방(東方)의 여섯 효자를 병풍(屛風)에 그렸는데 나응삼의 모습[像]과 성명을 기입(記入)하여 하사(下賜)하였다. 이 사실은 『삼강속록(三綱續錄)』에 실려 있다. 1555년(명종 10)에는 그의 효행(孝行)이 특이하여 상으로 관직을 제수하기 위해 임용(任用)할 만한 인물(人物)인지를 감사에게 알아보도록 지시하고, 여러 차례 불렀다고 한다.
김제(金堤)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아버지와 함께 배향되었고,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나주나씨 여덟 효자를 기리는 팔효사(八孝祠)에도 모셔졌다.
부친은 건계(建溪) 나안세(羅安世)이고, 형은 행정(杏亭) 나응허(羅應虛)이다.
아버지가 병환중일 때는 그 변을 직접 맛보아 병세를 살폈고,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
1553년(중종 8)에 효자(孝子)로 정려(旋閭)되었다. 그의 호 구산처사(龜山處士)는 임금이 직접 써서 내려 준 것이다. 중종은 중국(中國)의 여섯 효자와 동방(東方)의 여섯 효자를 병풍(屛風)에 그렸는데 나응삼의 모습[像]과 성명을 기입(記入)하여 하사(下賜)하였다. 이 사실은 『삼강속록(三綱續錄)』에 실려 있다. 1555년(명종 10)에는 그의 효행(孝行)이 특이하여 상으로 관직을 제수하기 위해 임용(任用)할 만한 인물(人物)인지를 감사에게 알아보도록 지시하고, 여러 차례 불렀다고 한다.
김제(金堤)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아버지와 함께 배향되었고,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나주나씨 여덟 효자를 기리는 팔효사(八孝祠)에도 모셔졌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東國新續三綱行實孝子傳
湖南三綱錄
朝鮮人名辭書
나주나씨중앙종친회(http://www.najunassi.net)
東國新續三綱行實孝子傳
湖南三綱錄
朝鮮人名辭書
나주나씨중앙종친회(http://www.najunassi.net)
[집필자]
고윤희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8-12-31 | 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