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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탁(姜逴)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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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初名)강규(姜逵)
자(字)여달(汝達)
호(號)광재(光齋)
생년1585(선조 18)
졸년1665(현종 6)
시대조선중기
본관진주(晉州)
활동분야기타 > 처사
부강응백(姜應伯)
모함안이씨(咸安李氏)

[상세내용]

강탁(姜逴)
1585년(선조 18)∼1665년(현종 6)(주1)
생년
『무오 식년 사마 방목[만력 46년](戊午式年司馬榜目[萬曆四十六年])』
.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달(汝達), 호는 광재(光齋).

어렸을 때의 이름은 강규(姜逵)이며, 후에 탁(逴)으로 고쳤다. 부친은 강응백(姜應伯)이며, 모친은 함안이씨(咸安李氏)이다. 어머니 이씨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 절의(節義)를 지켜 정려(旌閭)되었으며, 그 일이 『이강행실(二綱行實)』에 실려 있다.

1618년(광해군 10)에 생원시에 급제하여,(주2)
생원 급제
『무오 식년 사마 방목[만력 46년](戊午式年司馬榜目[萬曆四十六年])』
박사제자(博士弟子)로 선발되었으나, 광해군(光海君) 대에 정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대사성(大司成) 정엽(鄭曄)에 의해서 천거되어 학사(學士)가 되었으며, 이원익(李元翼)의 추천으로 광릉참봉(光陵參奉)이 되었다. 후에 인조가 아버지인 원종(元宗)을 추존하면서 과거를 실시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어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 예빈시직장(禮賓寺直長),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등을 거쳐, 1650년(효종 1)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가 되었다.

봉화현감(奉化縣監)이 되어서는 법을 공정하게 시행하였다는 명망이 있었다. 임담(林墰)이 그의 사람됨을 보고 산음현감(山陰縣監)에 특별히 제수하였으나, 대신의 미움을 샀던 일로 인하여 대간이 논박을 하고, 마침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체직하게 되었다. 이후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1664년(현종 5)에 나이가 80세가 넘어 통정(通政)에 가자되고(주3)
통정 가자
현종실록 9권 1664년 7월 2일자 기사 참고.
부호군(副護軍)을 제수받았다.

아들로 강석행(姜錫行), 강석명(姜錫明), 강석형(姜錫亨), 강석평(姜錫平)이 있다.

[참고문헌]

記言 別集(許穆)
현종실록
『무오 식년 사마 방목[만력 46년](戊午式年司馬榜目[萬曆四十六年])』(하버드옌칭도서관[K 2291.7 1746 (1618)])

[집필자]

김성수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