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새(許璽)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D5C8C0C8FFFFD1682X0 |
생년 | ?(미상) |
졸년 | 1682(숙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양천(陽川) |
활동분야 | 학생 > 유생 |
부 | 허대(許垈) |
[상세내용]
허새(許璽)
미상∼1682년(숙종 8). 조선 후기의 유생. 본관은 양천(陽川). 무옥(誣獄)에 희생당한 유생 허대(許垈)의 아들이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쫓겨나고 서인이 집권한 뒤 남인의 잔여세력을 완전히 숙청하기 위하여, 서인의 김석주(金錫胄)‧김익훈(金益勳) 등이 전 병사 김환(金煥), 출신(出身) 이회(李), 기패관(旗牌官) 한수만(韓壽萬) 등을 시켜 남인 유생이던 허새 등이 주상이 무도하고 조정이 문란하므로 300명의 병사가 궁궐을 침범하여 복평군(福平君)을 추대하고 대왕대비를 수렴청정(垂簾聽政)하게 한다고 무고하게 하였다.
이에 국청(鞫廳)을 설치하여 관련된 남인들을 모두 처단하게 되었는데, 이 무옥의 주동자로 몰려 처형당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 이후 신원(伸寃)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쫓겨나고 서인이 집권한 뒤 남인의 잔여세력을 완전히 숙청하기 위하여, 서인의 김석주(金錫胄)‧김익훈(金益勳) 등이 전 병사 김환(金煥), 출신(出身) 이회(李), 기패관(旗牌官) 한수만(韓壽萬) 등을 시켜 남인 유생이던 허새 등이 주상이 무도하고 조정이 문란하므로 300명의 병사가 궁궐을 침범하여 복평군(福平君)을 추대하고 대왕대비를 수렴청정(垂簾聽政)하게 한다고 무고하게 하였다.
이에 국청(鞫廳)을 설치하여 관련된 남인들을 모두 처단하게 되었는데, 이 무옥의 주동자로 몰려 처형당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 이후 신원(伸寃)되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燃藜室記述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명 : "새(璽)"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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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