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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륭(申翊隆)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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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군필(君弼)
호(號)호량(濠梁)
생년?(미상)
졸년1657(효종 8)
시대조선중기
본관평산(平山)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감(申鑑)

[상세내용]

신익륭(申翊隆)
미상∼1657년(효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군필(君弼), 호는 호량(濠梁). 참판 신감(申鑑)의 아들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남원부사로 있는 아버지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자 그는 지리산으로 달려가서 승병(僧兵)을 이끌고 뒤따랐다.

1630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1635년에 별시(別試)에 급제하였으나 사람들의 비방이 있었으므로 전시(殿試)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해에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를 거쳐 시직(侍直)이 되었다.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비와 빈궁(嬪宮)‧왕자들을 모시고 강화로 피난을 갔으나, 적의 침공을 받아 성이 무너지고 이어서 굴욕의 강화가 성립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으나 봉림대군(鳳林大君: 孝宗)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벼슬을 버리고 호남 지방을 유랑한 지 30년 만에 회덕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