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갑(徐羊甲)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1CC591AC11D1613X0 |
생년 | ?(미상) |
졸년 | 1613(광해군 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부여(扶餘) |
활동분야 | 학생 > 유생 |
부 | 서익(徐益) |
[상세내용]
서양갑(徐羊甲)
미상∼1613년(광해군 5). 조선 중기의 유생. 강변칠우(江邊七友)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부여(扶餘). 목사 서익(徐益)의 아들이다.
서자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었으나 서얼차대(庶孽差待)로 관리에 등용되지 못함을 불만으로 여겨오던 중, 같은 서출인 박응서(朴應犀)‧심우영(沈友英)‧박치의(朴致毅)‧박치인(朴致仁)‧이경준(李耕俊)‧김평손(金平孫) 등과 소양강 부근을 근거로 강변칠우‧죽림칠우(竹林七友)를 자처하며 시와 술로 교유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조령(鳥嶺)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살해하고 은 600∼700냥을 강탈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때 목숨을 살려준다는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의 꾐에 빠져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아버지이자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외조부인 김제남(金悌男)과 모의하여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계획을 하였다고 허위진술을 하여 계축옥사를 불러일으키고 자신도 죽음을 당하였다.
서자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었으나 서얼차대(庶孽差待)로 관리에 등용되지 못함을 불만으로 여겨오던 중, 같은 서출인 박응서(朴應犀)‧심우영(沈友英)‧박치의(朴致毅)‧박치인(朴致仁)‧이경준(李耕俊)‧김평손(金平孫) 등과 소양강 부근을 근거로 강변칠우‧죽림칠우(竹林七友)를 자처하며 시와 술로 교유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조령(鳥嶺)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살해하고 은 600∼700냥을 강탈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때 목숨을 살려준다는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의 꾐에 빠져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아버지이자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외조부인 김제남(金悌男)과 모의하여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계획을 하였다고 허위진술을 하여 계축옥사를 불러일으키고 자신도 죽음을 당하였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黨議通略
黨議通略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성명 : "서양갑(徐羊甲)"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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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