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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金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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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군택(君澤)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개성(開城)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자양(金自陽)

[상세내용]

김지(金漬)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군택(君澤).

부친은 창원부사 김자양(金自陽)이다.

1561년(명종 16)에 진사가 되고, 1569년(선조 2)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삼사(三司)를 비롯한 내외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공주목사로 있을 때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김포로 돌아가 상을 치르는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선조가 몽진한다는 말을 듣고 형제인 김황(金滉)김유(金濡)와 함께 거병하기를 결심하였다.

평양에서 선조를 알현한 뒤 소모관(召募官)에 제수되어 의용장 박내성(朴乃成) 등 1천여명을 모집하여 삭령에 주둔하면서 기계(奇計)를 사용하여 가까운 읍에 있는 적을 많이 섬멸하였다. 처음에 삭령에 이르러 왕위를 세자에게 전하여 인심을 수습할 것을 상소하자, 선조가 기뼈하지 않고 오히려 교서를 내려 자리를 옮기도록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의 간청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한양으로 환궁한 뒤 조정에서 망언을 허물로 삼자, 화를 당할까 염려하여 어머니의 종상(終喪)을 칭하여 김포로 돌아갔다. 뒤에 개성숭남사(崧南祠)에 향사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榜目
崧陽耆舊傳

[집필자]

최진옥(崔珍玉)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