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서(吳命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624BA85C11CB1688X0 |
자(字) | 신경(信卿) |
생년 | 1688(숙종 14) |
졸년 | 1740(영조 1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해주(海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오수일(吳遂一) |
[상세내용]
오명서(吳命瑞)
1688년(숙종 14)∼1740년(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신경(信卿).
부친은 군수 오수일(吳遂一)이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고, 1711년(숙종 37)에 음보로 정릉참봉(貞陵參奉)이 되고, 의금부도사‧활인서별제‧장례원사의를 거쳐 봉화현감으로 부임하여 양전(量田)을 잘하여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그뒤 세자익위사 익찬(翊贊), 대구 통판(通判), 사옹원주부를 거쳐 다시 의금부도사가 되었고, 1731년(영조 7)에 합천군수로 나가 동요된 민심을 안정시키고 농사를 장려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듬해에 선산부사‧영희전령(永禧殿令)이 되고, 1735년에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승지‧동래부사를 거쳐 경상도관찰사, 병조‧예조의 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부친은 군수 오수일(吳遂一)이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고, 1711년(숙종 37)에 음보로 정릉참봉(貞陵參奉)이 되고, 의금부도사‧활인서별제‧장례원사의를 거쳐 봉화현감으로 부임하여 양전(量田)을 잘하여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그뒤 세자익위사 익찬(翊贊), 대구 통판(通判), 사옹원주부를 거쳐 다시 의금부도사가 되었고, 1731년(영조 7)에 합천군수로 나가 동요된 민심을 안정시키고 농사를 장려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듬해에 선산부사‧영희전령(永禧殿令)이 되고, 1735년에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승지‧동래부사를 거쳐 경상도관찰사, 병조‧예조의 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老洲集
國朝榜目
老洲集
[집필자]
정덕기(鄭德基)
명 : "명서(命瑞)"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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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