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申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2E0C11DFFFFB1681X0 |
자(字) | 성여(聖與) |
생년 | 1681(숙종 7)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서화(申瑞華) |
조부 | 신정(申晸)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석(申晳)
1681년(숙종 7)∼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성여(聖與).
이조판서 신정(申晸)의 손자이고, 부사 신서화(申瑞華)의 아들이다.
1699년(숙종 25)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을 거쳐 이듬해 동지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그뒤 지평‧정언‧부교리‧이조좌랑‧헌납‧교리‧응교‧사간‧겸필선 등을 역임하였다.
1722년(경종 2)에 신임사화로 관작을 삭탈당하고, 이듬해 선산으로 유배되었다. 영조의 즉위로 소론이 실각하자, 그 이듬해인 1725년(영조 1)에 유배지가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고, 뒤이어 풀려났다.
이조판서 신정(申晸)의 손자이고, 부사 신서화(申瑞華)의 아들이다.
1699년(숙종 25)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을 거쳐 이듬해 동지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그뒤 지평‧정언‧부교리‧이조좌랑‧헌납‧교리‧응교‧사간‧겸필선 등을 역임하였다.
1722년(경종 2)에 신임사화로 관작을 삭탈당하고, 이듬해 선산으로 유배되었다. 영조의 즉위로 소론이 실각하자, 그 이듬해인 1725년(영조 1)에 유배지가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고, 뒤이어 풀려났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신해순(申解淳)
명 : "절(晢)"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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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