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대(崔昌大)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D5CCC3DB300B1669X0 |
자(字) | 효백(孝伯) |
호(號) | 곤륜(昆侖) |
생년 | 1669(현종 10) |
졸년 | 1720(숙종 4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최석정(崔錫鼎) |
모 | 경주이씨(慶州李氏) |
증조부 | 최명길(崔鳴吉) |
외조부 | 이경억(李慶億) |

[관련정보]
[상세내용]
최창대(崔昌大)
1669년(현종 10)∼1720년(숙종 4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백(孝伯), 호는 곤륜(昆侖). 영의정 최명길(崔鳴吉)의 증손으로,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아들이며, 모친은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경억(李慶億)의 딸이다.
1687년(숙종 13) 생원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설서‧부수찬을 거쳐 1698년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어 교리‧이조좌랑‧헌납‧응교를 거쳐 1704년 사서(司書)‧이조정랑을 지냈고, 1706년 사간 등을 지낸 뒤 1711년 대사성에 승진하였으며, 그 뒤 이조참의‧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박세채(朴世采)‧김창협(金昌協)에 비교되었고,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경서에 밝아 당시 사림에게 추앙을 받았으며, 글씨에도 능하였다.
암행어사로 있을 때 함경도 일대의 관폐를 엄명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또한 전라도에 어사로 나가서는 진소어(眞蘇魚)의 수세(收稅)에 따른 폐단과 각 고을 승려에게 부과하는 지공(紙貢)에 따른 폐단, 연해 제읍(諸邑)의 수령을 무신만으로 임명하는 데 따른 문제점 등에 대한 서계(書啓)를 올렸다.
저술도 많이 있으나 대부분 산일(散佚)되고, 『곤륜집』 20권 10책 만이 전하여지고 있다.
1687년(숙종 13) 생원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설서‧부수찬을 거쳐 1698년 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어 교리‧이조좌랑‧헌납‧응교를 거쳐 1704년 사서(司書)‧이조정랑을 지냈고, 1706년 사간 등을 지낸 뒤 1711년 대사성에 승진하였으며, 그 뒤 이조참의‧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박세채(朴世采)‧김창협(金昌協)에 비교되었고,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경서에 밝아 당시 사림에게 추앙을 받았으며, 글씨에도 능하였다.
암행어사로 있을 때 함경도 일대의 관폐를 엄명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고, 또한 전라도에 어사로 나가서는 진소어(眞蘇魚)의 수세(收稅)에 따른 폐단과 각 고을 승려에게 부과하는 지공(紙貢)에 따른 폐단, 연해 제읍(諸邑)의 수령을 무신만으로 임명하는 데 따른 문제점 등에 대한 서계(書啓)를 올렸다.
저술도 많이 있으나 대부분 산일(散佚)되고, 『곤륜집』 20권 10책 만이 전하여지고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昆侖集
昆侖集
[집필자]
김능하(金綾夏)
명 : "창대(昌大)"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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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