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신(丁思愼)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815C0ACC2E0B1662X0 |
자(字) | 성공(聖功) |
호(號) | 기수(畸叟) |
생년 | 1662(현종 3) |
졸년 | 1722(경종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나주(羅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도겸(丁道謙) |
조부 | 정시한(丁時翰) |
출신지 | 원주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사신(丁思愼)
1662년(현종 3)∼1722년(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성공(聖功), 호는 기수(畸叟). 원주 출신.
첨지중추부사 정시한(丁時翰)의 손자이며, 정자 정도겸(丁道謙)의 아들이다. 일찍이 할아버지로부터 학문을 익혀 1687년(숙종 13)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 생원‧진사가 된 뒤,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부정자‧승정원주서‧성균관전적‧병조정랑 등을 거쳐 1693년 수찬이 되고, 이어 정언‧지평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수찬으로서 상소, 귀양간 권대운(權大運)‧목내선(睦來善) 등 남인의 노대신들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 삭탈관작당하였다.
1707년 다시 등용되어 안성군수‧선산부사‧공조참의‧호조참의 등을 거쳐, 1722년 풍덕부사로 있을 때 임지에서 죽었다.
첨지중추부사 정시한(丁時翰)의 손자이며, 정자 정도겸(丁道謙)의 아들이다. 일찍이 할아버지로부터 학문을 익혀 1687년(숙종 13)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 생원‧진사가 된 뒤,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부정자‧승정원주서‧성균관전적‧병조정랑 등을 거쳐 1693년 수찬이 되고, 이어 정언‧지평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수찬으로서 상소, 귀양간 권대운(權大運)‧목내선(睦來善) 등 남인의 노대신들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 삭탈관작당하였다.
1707년 다시 등용되어 안성군수‧선산부사‧공조참의‧호조참의 등을 거쳐, 1722년 풍덕부사로 있을 때 임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星湖集
國朝榜目
星湖集
[집필자]
조원래(趙湲來)
명 : "사신(思愼)"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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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