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하(宋炳夏)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A1BCD1D558B1646X0 |
자(字) | 자화(子華) |
호(號) | 수오재(守迕齋) |
생년 | 1646(인조 24) |
졸년 | 1697(숙종 23)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은진(恩津)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송광식(宋光栻) |
조부 | 송준길(宋浚吉) |
[관련정보]
[상세내용]
송병하(宋炳夏)
1646년(인조 24)∼1697년(숙종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화(子華), 호는 수오재(守迕齋).
좌참찬 송준길(宋浚吉)의 손자이며, 정랑 송광식(宋光栻)의 아들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현종말에 천거받고, 1680년(숙종 6)에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다.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거쳐 외직으로 나아가 아산현감‧덕산현감‧익산군수를 역임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및 정(正) 등을 지냈다.
그뒤 수원부사‧충주목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한편, 장악원첨정으로 재직 때에는 초인(抄人)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송준길이 그를 가리켜 집안 식구들에게 “이 아이는 우리집의 어사손자가 될 재목이다.”라고 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손들에게 부귀는 천명에 있으므로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학문을 닦아 선인이 되면 복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좌참찬 송준길(宋浚吉)의 손자이며, 정랑 송광식(宋光栻)의 아들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현종말에 천거받고, 1680년(숙종 6)에 희릉참봉(禧陵參奉)이 되었다.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거쳐 외직으로 나아가 아산현감‧덕산현감‧익산군수를 역임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 및 정(正) 등을 지냈다.
그뒤 수원부사‧충주목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한편, 장악원첨정으로 재직 때에는 초인(抄人)으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 송준길이 그를 가리켜 집안 식구들에게 “이 아이는 우리집의 어사손자가 될 재목이다.”라고 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손들에게 부귀는 천명에 있으므로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학문을 닦아 선인이 되면 복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人物志
恩津宋氏金石錄
國朝人物志
恩津宋氏金石錄
[집필자]
공원영(孔黿泳)
자 : "자화(子華)"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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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