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일(金海一)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D574C77CB1640X0 |
자(字) | 종백(宗伯) |
호(號) | 단곡(檀谷) |
생년 | 1640(인조 18) |
졸년 | 1691(숙종 1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예안(禮安)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단(金鍴) |
[관련정보]
[상세내용]
김해일(金海一)
1640년(인조 18)∼1691년(숙종 1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종백(宗伯), 호는 단곡(檀谷).
부친은 김단(金鍴)이다.
1660년(현종 1)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63년 선교랑(宣敎郞)의 신분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로 지평‧정언‧헌납‧집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초년 집권세력의 한 사람으로서, 1675년에는 김수항(金壽恒)을 탄핵하여 유배시키고, 허목(許穆)과 윤휴(尹鑴)의 대립에는 허목을 편들었다.
1678년 집의로 재직중에는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1689년에는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부사(副使)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축출되었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승지로 등용되었다. 목민관으로는 경주부윤까지 승진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행동이 의젓하였다.
부친은 김단(金鍴)이다.
1660년(현종 1)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63년 선교랑(宣敎郞)의 신분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로 지평‧정언‧헌납‧집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숙종 초년 집권세력의 한 사람으로서, 1675년에는 김수항(金壽恒)을 탄핵하여 유배시키고, 허목(許穆)과 윤휴(尹鑴)의 대립에는 허목을 편들었다.
1678년 집의로 재직중에는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1689년에는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의 부사(副使)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축출되었다가, 1689년 기사환국 때 승지로 등용되었다. 목민관으로는 경주부윤까지 승진하였다. 문장이 뛰어나고 행동이 의젓하였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淸選考
肅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김호종(金昊鍾)
명 : "해일(海一)"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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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