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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尹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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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경(子敬)
호(號)덕포(德浦)
생년1631(인조 9)
졸년1698(숙종 24)
시대조선중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순거(尹舜擧)
함평이씨(咸平李氏)
외조부이춘원(李春元)
저서『덕포유고』

[상세내용]

윤진(尹搢)
1631년(인조 9)∼1698년(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경(子敬), 호는 덕포(德浦).

부친은 장령 윤순거(尹舜擧)이며, 모친은 함평이씨(咸平李氏)관찰사 이춘원(李春元)의 딸이다.

1652년(효종 3)에 생원시에 합격, 그뒤 10년이 지나 빙고별제(氷庫別提)종부직장(宗簿直長)인의(引儀)상의주부(尙衣主簿) 등을 지냈다.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성균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정언지평수찬헌납 등을 지냈다.

1673년 부교리에 승진되었고, 다음해 능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679년(숙종 5) 사간에 임명되고 다음해 순창군수에 부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렸다.

1681년 박태손(朴泰遜)김수항(金壽恒)의 천거로 예조참의에 발탁되었다.

1689년 대사헌에 임명되었는데 남구만(南九萬)이 어전에서 “윤진은 학문과 인격이 훌륭하니 특별히 정성과 예로써 대우하여야 됩니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에 그의 덕망을 짐작할 수 있다.

1696년 경기관찰사로 임명되었으나 대신들의 진정으로 체대를 허락하여 전직에 유임되었다.

그는 관직에 있을 때 붕당을 타파시킬 것, 언로를 열 것, 구황‧휼민에 힘쓸 것 등 여러가지 시의적절한 정책건의를 많이 하였다.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덕포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德浦遺稿
明齋遺稿(尹拯)
艮齋集(崔圭瑞)
藥泉集(南九萬)
西溪集(朴世堂)
明谷集(崔錫鼎)

[집필자]

이동길(李東吉)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