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검(朴守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218AC80B1629X0 |
자(字) | 양백(養伯) |
호(號) | 임호(林湖) |
생년 | 1629(인조 7) |
졸년 | 1698(숙종 2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의흥(義興)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박경심(朴景諶) |
모 | 문화유씨(文化柳氏) |
저서 | 『절위여편(絶韋餘編)』 |
저서 | 『중용연의(中庸演義)』 |
저서 | 『진사통고(震史通考)』 |
[관련정보]
[상세내용]
박수검(朴守儉)
1629년(인조 7)∼1698년(숙종 24).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의흥(義興). 자는 양백(養伯), 호는 임호(林湖). 박경심(朴景諶)의 아들이며, 모친은 문화유씨(文化柳氏)이다.
조석윤(趙錫胤)‧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특히 조석윤에게서 배운 바가 커 문명을 떨쳤다.
그뒤 송시열을 사사하여 사서‧육경과 정주학설을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주역』과 『중용』 연구에 진력하였다.
1662년(현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71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전적 등을 거쳐 예조좌랑‧호조정랑을 지냈다. 외직으로는 무장(茂長)‧정천(定川)의 현감을 역임하고, 다시 내직의 통례원좌통례에 이르렀다.
그뒤 인현왕후 민씨의 폐출됨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제천의 임호(林湖)로 내려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다가, 복위와 더불어 다시 벼슬길에 올랐으나 하급관원에 머물렀다.
저서로는 『절위여편(絶韋餘編)』‧『중용연의(中庸演義)』‧『진사통고(震史通考)』 등이 있다.
조석윤(趙錫胤)‧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특히 조석윤에게서 배운 바가 커 문명을 떨쳤다.
그뒤 송시열을 사사하여 사서‧육경과 정주학설을 섭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주역』과 『중용』 연구에 진력하였다.
1662년(현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71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전적 등을 거쳐 예조좌랑‧호조정랑을 지냈다. 외직으로는 무장(茂長)‧정천(定川)의 현감을 역임하고, 다시 내직의 통례원좌통례에 이르렀다.
그뒤 인현왕후 민씨의 폐출됨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제천의 임호(林湖)로 내려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다가, 복위와 더불어 다시 벼슬길에 올랐으나 하급관원에 머물렀다.
저서로는 『절위여편(絶韋餘編)』‧『중용연의(中庸演義)』‧『진사통고(震史通考)』 등이 있다.
[참고문헌]
[집필자]
윤혁동(尹焃東)
성명 : "박수검(朴守儉)"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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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