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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절(尹晢)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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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강(子章)
호(號)한송(寒松)
생년1625(인조 3)
졸년1662(현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순거(尹舜擧)
함평이씨(咸平李氏)
조부윤황(尹煌)
증조부윤창세(尹昌世)
남원윤씨(南原尹氏)
처부윤집(尹集)
외조부이춘원(李春元)

[상세내용]

윤절(尹晢)
1625년(인조 3)∼1662년(현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강(子章), 호는 한송(寒松). 본관은 파평(坡平). 증조부는 윤창세(尹昌世)이고, 조부는 팔송(八松) 윤황(尹煌)이며, 부친은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이다.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조카이다. 모친은 함평이씨(咸平李氏)구완(九畹) 이춘원(李春元)의 딸이고, 부인은 남원윤씨(南原尹氏)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의 딸로, 4남 1녀를 두었으며 딸은 목사(牧使) 권상하(權尙夏)에게 시집갔다.

1648년(인조 26) 무자식년사마시(戊子式年司馬試)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고, 1660년(현종 1) 봄에 침랑(寢郞)이 되었다가 같은 해 겨울, 경자증광문과(庚子增廣文科)에 을과 3등으로 급제하였다. 합격 이후 뛰어난 자질로 삼관(三館: 승문원, 성균관, 교서관)에 배치되기도 전에 추천을 받아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갔다.

1661년(현종 2) 전적(典籍)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내고 접위관(接慰官)으로 뽑혔다. 당시 동래왜관(東萊倭館)에 부임하여 『근사록(近思錄)』『주자전서(朱子全書)』를 읽었으며, 청렴결백하여 동래사람들과 왜인들이 존경하였다.

1662년(현종 3)에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에 임명되었다가 체직되었다.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에 수토병이 악화되어 8월 17일에 세상을 떠나 이산(尼山) 선영에 묻혔다. 공무 중에 객지에서 죽어서 임금이 각 고을로 하여금 호상(護喪)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文科榜目
司馬榜目

[집필자]

이미선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07-08석호(石湖) 윤노서(尹魯西)를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와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로 수정.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여 증직 부수찬(副修撰)를 현직으로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