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鄭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15C11DFFFFB1619X0 |
자(字) | 백야(白也) |
호(號) | 악남(岳南) |
생년 | 1619(광해군 11)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해주(海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정효준(鄭孝俊) |
저서 | 『악남집』 |
[관련정보]
[상세내용]
정석(鄭晳)
1619년(광해군 11)∼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야(白也), 호는 악남(岳南). 정효준(鄭孝俊)의 아들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정(學正)‧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어 1654년(효종 5)에 인조의 총희 조숙원(趙淑媛)문제를 논하다가 영산(靈山)에 유배되었다.
2년 뒤 복관되어 정언‧지평‧장령 등을 역임하였고, 1662년(현종 3)에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으로 문신정시(文臣庭試)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뒤 수찬‧교리‧집의‧응교를 거쳐 1669년에 동래부사가 되어 왜관(倭館)을 동래부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왜인을 잘 규리(糾理)하지 못하였다 하여 파면되었다.
그뒤 승지‧대사간을 거쳐 예조참판이 되었고, 1679년(숙종 2)에 『명사(明史)』 가운데 잘못 기술된 인조반정 기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변무부사(辨誣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악남집』 1책이 있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학정(學正)‧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어 1654년(효종 5)에 인조의 총희 조숙원(趙淑媛)문제를 논하다가 영산(靈山)에 유배되었다.
2년 뒤 복관되어 정언‧지평‧장령 등을 역임하였고, 1662년(현종 3)에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으로 문신정시(文臣庭試)에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뒤 수찬‧교리‧집의‧응교를 거쳐 1669년에 동래부사가 되어 왜관(倭館)을 동래부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왜인을 잘 규리(糾理)하지 못하였다 하여 파면되었다.
그뒤 승지‧대사간을 거쳐 예조참판이 되었고, 1679년(숙종 2)에 『명사(明史)』 가운데 잘못 기술된 인조반정 기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변무부사(辨誣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악남집』 1책이 있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顯宗實錄
肅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성명 : "정석(鄭晳)"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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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