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金始振)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2DCC9C4B1618X0 |
자(字) | 백옥(伯玉) |
호(號) | 반고(盤皐) |
생년 | 1618(광해군 10) |
졸년 | 1667(현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남헌(金南獻) |
증조부 | 김명원(金命元) |

[상세내용]
김시진(金始振)
1618년(광해군 10)∼1667년(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옥(伯玉), 호는 반고(盤皐).
증조부는 좌의정 김명원(金命元)이며, 부친은 김남헌(金南獻)이다.
1644년(인조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검열이 되었다.
1647년 지평이 된 뒤 문학‧수찬‧부교리‧교리‧집의 등을 거쳐, 1659년(효종 10)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때 이몽학(李夢鶴)의 당여로 오해받아 장살당한 김덕령(金德齡)의 신원(伸寃)을 건의하였다.
1662년(현종 3) 승지를 지낸 뒤 경기좌균전사(京畿左均田使)로 파견되었으며, 1666년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한성부좌윤‧수원부사‧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증조부는 좌의정 김명원(金命元)이며, 부친은 김남헌(金南獻)이다.
1644년(인조 2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검열이 되었다.
1647년 지평이 된 뒤 문학‧수찬‧부교리‧교리‧집의 등을 거쳐, 1659년(효종 10)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때 이몽학(李夢鶴)의 당여로 오해받아 장살당한 김덕령(金德齡)의 신원(伸寃)을 건의하였다.
1662년(현종 3) 승지를 지낸 뒤 경기좌균전사(京畿左均田使)로 파견되었으며, 1666년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한성부좌윤‧수원부사‧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顯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김일기(金馹起)
대표명 | 김시진(金始振) |
성명 | 김시진(金始振), 김참판시진(金參判始振) |
자 | 백옥(伯玉) |
호 | 반고(盤皐) |
성명 : "김시진(金始振)"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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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