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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담(宋時倓)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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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대이(大而)
호(號)부훤당(負暄堂)
생년1605(선조 38)
졸년1662(현종 3)
시대조선중기
본관은진(恩津)
활동분야문신 > 문신
습정공(習靜公)
송방조(宋邦祚)
진주정씨(晉州鄭氏)
조부송응기(宋應期)
외조부정곡(鄭谷)

[상세내용]

송시담(宋時倓)
1605년(선조 38)∼1662년(현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대이(大而), 호는 부훤당(負暄堂).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부친은 습정공(習靜公) 송방조(宋邦祚)이다. 어머니 진주정씨(晉州鄭氏)정곡(鄭谷)의 딸이다.

큰형 충현공(忠顯公) 송시영(宋時榮)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명에 따라 강화도의 분사(分司)에 들어갔으나, 강화성이 함락되자 김상용(金尙容) 등과 함께 자결하였다. 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좌찬성(左贊成)에 증직되었다. 중형 송시형(宋時瑩)은 1633년(인조 11) 계유식년사마시(癸酉式年司馬試)에 진사(進士) 2등으로 합격하였고, 사림(士林)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큰형 송시영과 중형 송시형에게 과거에 필요한 과정을 배웠다. 여러 번 향시(鄕試)에는 합격하였으나 사마시(司馬試)에는 실패하였다. 1636년(인조 14) 큰형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자 벼슬할 뜻을 접었다.

예산(禮山) 술곡리(述谷里)에 집을 짓고 살다가 1662년(현종 3)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처는 현감(縣監) 황수(黃수)의 딸이고, 후처는 정종(定宗)의 후예 사인(士人) 이융(李隆)의 딸이다. 두 부인 모두에게서 아들을 두지 못하여서 중형의 아들 송기항(宋基恒)을 양자로 들여 송명석(宋命錫)송경석(宋慶錫)을 두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司馬榜目

[집필자]

김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