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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吳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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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회백(晦伯)
호(號)금암(琴巖)
생년1602(선조 35)
졸년1675(숙종 1)
시대조선중기
본관보성(寶城)
활동분야문신 > 문신
오행원(吳行遠)

[상세내용]

오소(吳熽)
1602년(선조 35)∼1675년(숙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회백(晦伯), 호는 금암(琴巖). 오행원(吳行遠)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경사(經史)의 해득에 뛰어났고, 문사(文辭)가 화려하며 필법이 호건(豪健)하였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3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42년 전적을 거쳐 예조좌랑을 지냈다. 아버지상을 당하여 낙향하였다가 1646년에 정언, 이듬해에 병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48년 고성현령을 지내고, 1651년(효종 2) 지평을 지냈으며, 이듬해 외직으로 나가 홍산(鴻山)영천(永川)문천(文川)대흥(大興)풍기(豊基)의 수령을 역임하고, 1666년(현종 7) 좌통례(左通禮)를 거쳐 흥해군수가 되었다.

1668년 진주목사를 지냈으며 1673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역임하였다. 외직에 있으면서 유학을 장려하고, 청렴하여 군읍민의 칭송을 받았으며 청백리의 칭호를 받았다.

1706년(숙종 32) 기암서원(機巖書院)에 배향되었고, 1794년(정조 18) 좌승지로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國朝榜目
機巖書院重建錄
寶城吳氏世譜

[집필자]

오갑균(吳甲均)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