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계훈(崔繼勳)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D5CACC4D6C8B1601X0 |
자(字) | 덕회(德會) |
생년 | 1601(선조 34) |
졸년 | 1657(효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최구(崔衢) |
생부 | 최행(崔行) |
조부 | 최철견(崔鐵堅) |
증조부 | 최력(崔櫟) |
외조부 | 심우단(沈友端) |
[관련정보]
[상세내용]
최계훈(崔繼勳)
1601년(선조 34)∼1657년(효종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덕회(德會).
증호조참판 최력(崔櫟)의 증손으로, 조부는 병조정랑 최철견(崔鐵堅)이고, 생부는 최행(崔行)이며, 최구(崔衢)에게 입양되었다. 양모친은 심우단(沈友端)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7년(인조 15) 사헌부정언‧장령‧헌납, 1639년(인조 17)에는 지제교를 지냈다.
그 뒤 1644년(인조 22)에는 청나라의 천도(遷都) 송축(頌祝)을 위해 서정관으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청주목사를 지낼 때에는 지나친 전세 수취에 대하여 사헌부의 조사 보고가 있었으나, 왕은 토호들로부터 전세를 빠짐없이 받아 국곡(國穀)을 확충하려는 의도였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그는 선정을 베풀고 목민관(牧民官)으로서도 표창되었다.
증호조참판 최력(崔櫟)의 증손으로, 조부는 병조정랑 최철견(崔鐵堅)이고, 생부는 최행(崔行)이며, 최구(崔衢)에게 입양되었다. 양모친은 심우단(沈友端)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7년(인조 15) 사헌부정언‧장령‧헌납, 1639년(인조 17)에는 지제교를 지냈다.
그 뒤 1644년(인조 22)에는 청나라의 천도(遷都) 송축(頌祝)을 위해 서정관으로서 중국에 다녀왔다. 청주목사를 지낼 때에는 지나친 전세 수취에 대하여 사헌부의 조사 보고가 있었으나, 왕은 토호들로부터 전세를 빠짐없이 받아 국곡(國穀)을 확충하려는 의도였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그는 선정을 베풀고 목민관(牧民官)으로서도 표창되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안승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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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