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홍(金壽弘)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218D64DB1598X0 |
생년 | 1601(선조 34) |
졸년 | 1681(숙종 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안동(安東[新])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조부 | 김상용(金尙容) |
[상세내용]
김수홍(金壽弘)
1601년(선조 34)∼1681년(숙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新]).
조부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다.
1634년(인조 12) 생원이 되고, 1636년 성균관 유생으로 후금의 사신 용골대(龍骨大)를 참살하고 그 국서(國書)를 소각할 것을 상소하였다.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1666년(현종 7) 공조정랑, 1674년(숙종 즉위) 장령(掌令), 이듬해 승지, 1676년 호조참판 등을 거쳐 1681년 지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
1674년에 효종의 비 인선대비 장씨(仁宣大妃張氏)가 죽자, 자의대비 조씨(慈懿大妃趙氏)의 복상문제가 다시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에 앞서 1660년(현종 1) 효종의 국상 때와 같이 기년제(朞年制)를 주장하는 같은 서인 송시열(宋時烈)에 반대하고, 남인이 주장하는 복제에 동조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명‧청교체기의 중국 연호의 사용에 있어서도 송시열은 명나라 연호인 숭정(崇禎)을 주장한 반면, 그는 청나라의 강희(康熙)를 주장하여, 항청순절(抗淸殉節)한 할아버지의 뜻과 반대되는 처지를 보였다.
조부는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다.
1634년(인조 12) 생원이 되고, 1636년 성균관 유생으로 후금의 사신 용골대(龍骨大)를 참살하고 그 국서(國書)를 소각할 것을 상소하였다.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1666년(현종 7) 공조정랑, 1674년(숙종 즉위) 장령(掌令), 이듬해 승지, 1676년 호조참판 등을 거쳐 1681년 지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
1674년에 효종의 비 인선대비 장씨(仁宣大妃張氏)가 죽자, 자의대비 조씨(慈懿大妃趙氏)의 복상문제가 다시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에 앞서 1660년(현종 1) 효종의 국상 때와 같이 기년제(朞年制)를 주장하는 같은 서인 송시열(宋時烈)에 반대하고, 남인이 주장하는 복제에 동조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명‧청교체기의 중국 연호의 사용에 있어서도 송시열은 명나라 연호인 숭정(崇禎)을 주장한 반면, 그는 청나라의 강희(康熙)를 주장하여, 항청순절(抗淸殉節)한 할아버지의 뜻과 반대되는 처지를 보였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肅宗實錄
顯宗實錄
肅宗實錄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명 : "수홍(壽弘)"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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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