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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망(申弘望)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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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망구(望久)
호(號)고송(孤松)
생년1600(선조 33)
졸년1673(현종 14)
시대조선중기
본관아주(鵝洲)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신지제(申之悌)
저서『고송집』

[상세내용]

신홍망(申弘望)
1600년(선조 33)∼1673년(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망구(望久), 호는 고송(孤松). 승지 신지제(申之悌)의 아들이다.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합격하고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3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지평정언풍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652년(효종 3)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도승지 이시매(李時楳)가 자못 패만(悖慢)한 것을 지평 이온발(李溫發)이 상주(上奏)하다가 탄핵을 당하였는데, 이때 이시매는 자기의 밝음을 선현을 이끌어서 증명하려 하였다.

이를 듣고서 직접 그 소(疏)를 보니 실로 모욕적이어서 이를 단독으로 왕에게 진달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당론을 타파하고자 하는 마당에 호당(護黨)한다 하여 탄핵을 받고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가 두달 뒤 풀려났다.

1659년 풍기군수로 나갈 때 읍재(邑宰)가 연달아 관청에서 죽자, “내가 그 자리에 나가지 않고서는 요망스러운 말을 없앨 수 없다.”라고 하고 부임한 뒤, 학교를 일으키고 교육에 힘썼다.

저서로는 『고송집』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孤松集
嶺南人物考

[집필자]

장필기(張弼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6-01눌은 이광정 찬 通訓大夫承文院判校兼春秋館編修官孤松申公行狀을 참고하여 졸년 1673(현종 14)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