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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우(金柱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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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만고(萬古)
호(號)이면(易眠)
생년1598(선조 31)
졸년1644(인조 22)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舊])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중청(金中淸)

[상세내용]

김주우(金柱宇)
1598년(선조 31)∼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본관은 안동(安東[舊]). 자는 만고(萬古), 호는 이면(易眠).

부친은 승지 김중청(金中淸)이다.

160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4년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을 제수받았다.

이듬해 정언이 되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광해군 때 국가에 곡식을 바치고 벼슬을 산 신하라 하여 간원에서 심히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김류(金瑬)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정언이 되었으며, 그뒤 지평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의 강도파천(江都播遷)에 따라가지 않았다고 하여 탄핵을 받았다.

1632년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있을 때, 온 집안이 큰 변을 만나 숙부가 옥에 갇히고 조부는 이 때문에 자살하였으며, 그도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체직되었다.

서예에 명망이 있어 13세에 진주 촉석루의 액(額)을 썼으며, 1625년에 왕명으로 동궁의 대병(大屛)에 사잠(四箴)을 쓰기도 하였다. 인조는 즉위하기 전부터 그의 재질을 알고 발탁하여 쓰고자 했으나, 아버지와 숙부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하급직에 머물고 말았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國朝榜目
訥隱先生文集

[집필자]

김동수(金東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