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척연(李惕然)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C99C5F0B1591X0 |
자(字) | 성오(省吾) |
호(號) | 동포(東圃) |
생년 | 1591(선조 24) |
졸년 | 1663(현종 4)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구(李球)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척연(李惕然)
1591년(선조 24)∼1663년(현종 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오(省吾), 호는 동이(同異)‧동포(東圃).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정종의 10남)의 6대손, 이구(李球)의 아들이다.
1627년(인조 5)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전적을 거쳐 호조‧예조‧병조의 좌랑이 되었다.
1630년에 정언이 되고 이어서 충청도도사‧성균관직강‧시강원문학을 거쳐, 지평이 되어 훈귀(勳貴)들의 횡포를 탄핵하여 풍속과 질서를 바로잡는 데 힘썼다. 직산현감과 안변‧안동의 부사를 역임한 뒤 호조참의가 되었다.
그뒤 장례원판결사‧병조참의‧예조참의를 역임하고 사임하여 고향에 돌아가 독서와 저술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학문이 깊었으며 특히 성리학에 밝아 ‘기일원론(氣一元論)’에서 ‘심무체론(心無體論)’을 주장하였다.
편서로는 『상례요람』이 있다.
1627년(인조 5)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검열‧전적을 거쳐 호조‧예조‧병조의 좌랑이 되었다.
1630년에 정언이 되고 이어서 충청도도사‧성균관직강‧시강원문학을 거쳐, 지평이 되어 훈귀(勳貴)들의 횡포를 탄핵하여 풍속과 질서를 바로잡는 데 힘썼다. 직산현감과 안변‧안동의 부사를 역임한 뒤 호조참의가 되었다.
그뒤 장례원판결사‧병조참의‧예조참의를 역임하고 사임하여 고향에 돌아가 독서와 저술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학문이 깊었으며 특히 성리학에 밝아 ‘기일원론(氣一元論)’에서 ‘심무체론(心無體論)’을 주장하였다.
편서로는 『상례요람』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孝宗實錄
顯宗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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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