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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호(洪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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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숙경(叔京)
호(號)동락(東洛)
생년1586(선조 19)
졸년1646(인조 24)
시대조선중기
본관부계(缶溪)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덕손(洪德孫)
저서『무주일고(無住逸稿)』

[상세내용]

홍호(洪鎬)
1586년(선조 19)∼1646년(인조 2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숙경(叔京), 호는 무주(無住)동락(東洛).

대제학 홍귀달(洪貴達)의 후손으로, 무반인 홍덕손(洪德孫)의 아들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나이 20세에 유성룡(柳成龍)을 만났으며, 그때 그에게 크게 칭찬을 받은 바 있다.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권력을 쥐고 있던 이이첨(李爾瞻)의 아들 이대엽(李大燁)승문원에 등용하자는 시론이 있었으나, 이를 극구 반대하였다.

1612년(광해군 4) 권지(權知), 이듬해 전적을 거쳐 박사에 이르렀다.

그뒤 외직으로 안동부제독으로 자청하여 나갔으며, 1623년(인조 즉위)에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 정경세호소사(號召使)가 되자, 그의 종사관으로 난의 진압에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인목대비의 서궁유폐와 폐모에 반대하다가 인조반정 후 아들과 함께 자살한 박승종(朴承宗)의 적몰사(籍沒事)에 공정한 견해의 상소를 올렸다가 훈신들의 미움을 사 영변판관으로 좌천되었다.

그뒤 1628년 예조정랑, 1630년 사예(司藝), 이어 종부시정(宗簿寺正)장령승지공조참의흥해군수 등을 거치고,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용병술로 포수를 지휘한 바 있다.

1640년 예조참의동부승지, 1643년 우부승지 등을 거치고, 1645년 대사간이 되었다.

인품이 깨끗하고, 영욕과 이해타산이 없어서 강한 자로 평을 받았으며, 문신이면서도 용병에 관하여 지식이 많아, 국책에 반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무주일고(無住逸稿)』가 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無住逸稿
國朝人物考
嶺南人物考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