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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남(崔奇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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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영숙(英叔)
호(號)묵헌(黙軒)
생년1586(선조 19)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천녕(川寧)
활동분야문학 > 시‧시조인
저서『구곡집』

[상세내용]

최기남(崔奇男)
1586년(선조 19)∼미상.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영숙(英叔), 호는 구곡(龜谷)묵헌(黙軒).

가계에 대하여서는 알 수가 없고, 어려서 신익성(申翊聖)의 문하에 드나들었는데 그의 아버지 신흠(申欽)의 눈에 띄어 시재를 인정받았다. 시재가 뛰어나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날렸으며, 1648년에는 윤순지(尹順之)를 따라 일본에 가서 문명(文名)을 떨쳤다.

성품이 깨끗하고 명예나 이익을 구하지 않아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또 경전에 밝았고 『주역』을 좋아하여 직접 베껴서 탐독하였다.

63세 때에는 병이 나 누워 있으면서도 도잠(陶潛)을 흉내내어 만시(輓詩) 3장을 지었고, 71세 때에는 병이 위독하여지자 자신의 제문을 짓기도 하였다. 현종초에 실록감인원(實錄監印員)이 되어 『효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나이가 70여세였다.

75세 때인 1660년에는 교유하던 위항시인인 정담수(鄭柟壽)남응침(南應琛)김효일(金孝一)최대립(崔大立)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동인지 『육가잡영(六家雜詠)』을 간행하였다.

또한, 위항시인들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아 문하에 훌륭한 시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그의 시는 당시(唐詩)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고, 특히 이경석(李景奭)은 그의 율시를 두보의 풍이라 하였다.

신익성은 “그의 고체시는 육조(六朝)의 것과 같고, 가행(歌行)은 당나라 시인들의 풍이며, 율조(律調)는 장경(長慶: 唐穆宗年號, 821∼824) 이전의 어투를 본받았다.”라고 평하였다.

그의 아들 승태(承太)승주(承胄)도 이름있는 시인이며, 그의 문하에서 임준원(林俊元)유찬홍(庾纘洪)이득원(李得元) 등 위항문학시대를 이끌어갈 위항시인이 많이 배출되었으므로 그가 조선 후기 위항문학의 발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정확한 졸년은 알 수 없으나 그의 시 가운데 1668년(83세)에 쓴 시가 있어서 그의 졸년은 그 뒤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저서로는 『구곡집』 2권이 있는데 문(文)은 자서전격인 「졸옹전(拙翁傳)」 한편뿐이고, 나머지는 440여수의 시로 채워져 있다.

[참고문헌]

里鄕見聞錄
逸士遺事
朝鮮平民文學史(具滋均, 文潮社, 1948)

[집필자]

고경식(高敬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