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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중(黃敬中)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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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직지(直之)
호(號)오촌(梧村)
생년1569(선조 2)
졸년1630(인조 8)
시대조선중기
본관창원(昌原)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황수(黃琇)
외조부이준(李浚)

[상세내용]

황경중(黃敬中)
1569년(선조 2)∼1630년(인조 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직지(直之), 호는 오촌(梧村).

부친은 영춘현감 황수(黃琇)이며, 모친은 이준(李浚)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시문에 능했고, 1602년(선조 3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승문원에 분속되었다가 이듬해 검열이 된 뒤 1604년 주서대교설서를 거쳐 사과에 올랐다. 이후 부수찬정언헌납병조정랑수찬교리사서를 역임하고, 암행어사가 되어 관동지방의 수재민 진휼에 힘썼다. 광해군 때에 선천군수를 지내고 1611년(광해군 3)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1615년 공청도관찰사(公淸道觀察使)를 거쳐 1621년 분병조참판(分兵曹參判)이 되고, 오위도총부총관이 되었으나 대북파의 전횡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행재소(行在所)로 가서 파주목사가 되어 난으로 피폐해진 전민(田民)의 복구에 노력하고, 김해원주목사를 거쳐 창원부사로 재직 중 죽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雲峰集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