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눌(李訥)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2C774B20CFFFFB1569X0 |
| 자(字) | 약우(若愚) |
| 호(號) | 낙의재(樂義齋) |
| 생년 | 1569(선조 2) |
| 졸년 | 1599(선조 32) |
| 시대 | 조선중기 |
| 본관 | 청안(淸安) |
| 활동분야 | 호국 > 의병 |

| 부 | 이신정(李新貞) |
| 모 | 오천정씨(烏川鄭氏) |
| 저서 | 『낙의재유집』 |
| 공신호 |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

[상세내용]
이눌(李訥)
1569년(선조 2)∼1599년(선조 32). 조선 중기의 의병. 본관은 청안(淸安). 자는 이약우(李若愚), 호는 낙의재(樂義齋). 첨정 이신정(李新貞)의 아들이며, 모친은 오천정씨(烏川鄭氏)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효경』과 『논어』를 배웠고, 학문보다 실천이 중요함을 알아 효제(孝悌)를 행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기집 종들과 주민‧승려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천사장(天使將)’이라는 기를 앞세우고 많은 전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郭再祐)와 화왕성(火旺城)에서 합세하여 적을 공략하였고, 통제사 원균(元均)이 패전하여 죽은 뒤에 진을 월성으로 옮겼다. 그해 9월 대구의 팔공산싸움에서 왼팔에 적탄을 맞았으나 전세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 뒤 사재를 털어 병화와 흉년으로 시달린 백성을 구휼하고, 자제들을 낙의재에 모아 충효의 길을 가르쳤다.
그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저서로는 『낙의재유집』 2권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효경』과 『논어』를 배웠고, 학문보다 실천이 중요함을 알아 효제(孝悌)를 행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기집 종들과 주민‧승려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천사장(天使將)’이라는 기를 앞세우고 많은 전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곽재우(郭再祐)와 화왕성(火旺城)에서 합세하여 적을 공략하였고, 통제사 원균(元均)이 패전하여 죽은 뒤에 진을 월성으로 옮겼다. 그해 9월 대구의 팔공산싸움에서 왼팔에 적탄을 맞았으나 전세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 뒤 사재를 털어 병화와 흉년으로 시달린 백성을 구휼하고, 자제들을 낙의재에 모아 충효의 길을 가르쳤다.
그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저서로는 『낙의재유집』 2권이 있다.
[참고문헌]
樂義齋遺集
松壕汀日記
忍心齋日錄
東輔實記
壬辰倡義錄
松壕汀日記
忍心齋日錄
東輔實記
壬辰倡義錄
[집필자]
양홍렬(梁鴻烈)
| 대표명 | 이눌(李訥) |
| 성명 | 이눌(李訥) |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